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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18 짝짓기
    잡설 2024. 4. 18. 10:05

    https://medium.com/@sm_app_intel/conquer-love-with-these-crucial-dating-app-statistics-2870ec5493cd

    Conquer love with these crucial dating app statistics

    By Priceonomics

    medium.com


    #datingapp

    야식에 음주하다 옆자리 이야기들으며 떠오른 단상.

    왕년에는 심심한 남녀들이 뭘 했을까. 대학생이라면 과방에 들렀다고 한다. 아니면 만화방 당구장 피씨방에 모여갔을 것이다. 남자라면 그런 아지트에 죽치고 있었을 것이고, 일부 여자라면 거기 들러 밥 사줄 선배를 모색했을 것이다.

    과방이 아니라 절 교회 학원 동아리라도 행태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요즘에 심심하면 어디로 갈까. 당연히 틴더에서 스와이핑을 한다. 그 결과 이십대 초중반 여성들은 또래나 몇살 차이나는 선배들과 넷플릭스 타임(또는 극장 DVD방)을 갖는 대신, 찌질하지 않고 제법 듬직한 삼십대 남성 차량 조수석에 앉고. 김밥천국 대신 와인 반주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초대받을 것이다.

    게다가 표준분포에 따라 각자의 매력은 더 투명하게 평가받고 대접받을 수 있다. 즉 교내 킹카들을 저울질하던 최상위 퀸카들은, 요즘 소셜미디어 레쥬메 가치에 비례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오일머니 리치에게 요트 파티 초대권과 항공권을 선물받을 일도 생긴다. 그리고 잘나가는 오빠들 지인망이 증가한다. 연애와 무관하게 스스로 인싸가 되어 비즈니스를 도모할 수도 있다. 추종자들이 일정 규모 이상 넘으면 된다.

    ——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남자 동정 비율이 증가하고 찌질한 인셀들이 증가하는 가를 설명하는 모양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부조리한 연애 결혼과 출산 거품으로 인한 불행이 줄어드는 스토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냥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외면받는 잉여 남성들을 동정하며 눈높이가 높아진 고가치 여성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갖든, 여성들의 홀로서기와 연대를 추구하건 각자 취향이고 사정일 뿐이다.

    다만 소수의 수컷이 다수의 암컷을 거느리는 현상은 야생에서 흔한 모양이다.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는 과반수 수컷은 소모되는 편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연 성비를 거스르는 기획은, 수컷의 노동력이 자원으로 다스려지고 그 자원들에게 보상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암컷을 일대일로 부여하는 시스템이 확립되며 기능하게 되었다고 추정해보기 시작했다.

    소모되는 수컷의 노동력은 도시와 공장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원동력이었고, 그들에게 암컷을 짝지어 불만을 잠재우는 방식을 망라해 아마도 가부장제와 결혼제도라고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기존의 가부장제는 대개 여성이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암컷의 이상형은 절대평가를 통과한 그럭저럭의 수컷이 아니라 대개 수컷 중 우두머리거나 생존력이 확실한 상류층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권도 없고 계급도 사라진 야생에서 그런 이상향을 부르는 명칭이 생겼다. 반도에 한해서. 재벌이다. 그런데 재벌(N세)은 요즘 획득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증여받아야하는 무엇이다. 그나마 몇몇 자수성가 수단들이 결혼시장에서 우대받는다.

    이것은 모바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세상을 바꾼 이야기도 아니고, 결혼 시장의 냉혹한 가치 측정과 피라미드 구조를 상기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현재 추락중인 연애 결혼율과 출산율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자, 어거지로 일대일 매칭을 추구했던 근대 산업사회의 일부일처제와 가부장제 문화가 단기적이고 비정상적이며 매스 가스라이팅 없이는 지속할 수 없는 변종이었음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야생에서 소수의 수컷의 다수의 암컷을 차지하는 것은 있음직하고 자연스러웠다. 적어도 일부 포유류들에서는 그렇게 진화가 이루어져 왔으니까. 수명이 매우 늘어난 개체군 집단에서 임신이나 출산도 아니고, 오십년 이상 오로지 일대일로 반려 관계를 맺자는 약속과 다짐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 짝짓기를 유지하려는 발상이 존속하는 것이 무리인 것이다.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출산율 회복 또는 평균 출산 7명 이상의 다산 문화는. 방구석에서 저녁과 밤에 할일이 그닥 없으며, 결혼이라는 장벽을 통과하지 않고는 생존과 섹스에 도달할 길이 없는 남녀 조합의 강제적인 결속 무리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데이팅앱과 소셜 미디어와 티비쇼들은. 최소한 수컷 상위 20% 이내에 서지 못하면 짝짓기 기회가 쉽지 않으리라는 냉혹한 섭리를 드러내는 수단이거나, 신기루만 좇다가 적령기를 넘기게 하여 인생들을 파탄내는 자본 착취 수단에 불과해 보인다.

    냉혹한 것은 시장과 기술과 문화의 변화일까? 아니면 수십만년 진화 과정에서 선택된 성선택 유전자 풀, 그의 표현형 즉 남녀의 짝짓기 행태와 생리일까.

    나는 출산이 줄어드는 만큼 행복의 총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삶이 감소하며 집단 행복들이 최적화되는 중이라고 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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