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론과 퐁퐁남 난리를 뒤늦게 알게 됐다. 그 과정에서 레드필을 알게되었는데, 이 알약은 일종의 폭탄이고 헛소리가 아니며 충분히 고찰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설거지론 난리가 20대 인셀 문화의 냉소적 조롱 놀이에서 비롯되다 보니 착잡하긴 하지만, 무시하고 꺼버려도 좋을 화두 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퐁퐁남에 대한 조롱은 가소로운 구석이 있었다.
설거지론 연애 경험이 전무하거나 매우 적은 남성이 젊은 시절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던 여성과 결혼하는 행위를, 타인이 식사를 마치고 남은 더러운 식기를 자발적으로 설거지하는 것에 비유하여 비합리적인 선택임을 주창하는 인터넷상의 담론이다.
문란한 성생활 경험 여부를 논외로 하면, 이를테면 미모가 3/10 등급 수준에 해당하는 피라미드 상층 여성과 결혼하고 부양할 능력이 있는 경제력 상위 20% 계층의 유부남이 대상이 된다. 경제력 관점에서도 통계적 관점에서도 이런 등급의 구성원은 결코 루저라고 할 수 없다.
퐁퐁남의 비극을 과장하기 위해 급여를 갈취당한다던가 굴욕적인 무시를 당한다던가하는 극단적인 설정이 가미되는데, 이런 요소는 핵심적이지 않으며 케바케이다.
여성에게 하이퍼거미의 알파적 측면과 베타적 측면이 있다면서, 남성의 본능에는 이중성이나 다극성이 없다고 가정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 성욕 충족 하나만으로 결혼 생활의 가치를 측정하는 건 너무 일차원적이다.
연애 - 결혼(배우자 계약) - 출산 - 양육
남성이 위의 스펙트럼 중 어느 지점에 가중치를 둘 것인지의 관점으로 간단히 모델링 해보자. 첫째. 출산과 양육을 포기하고 이에 자원을 할당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하면, 문제는 매우 단순화된다. 연애 기간과 빈도, 상대가 동의한다면 평생을 함께할 서약과 자원 배분의 문제만 남는다.
그런데 남자의 본능을 논하면서 값싼 정자, 많은 씨를 뿌리는 전략, 동물집단에서 보이는 알파가 암컷을 독점하는 유전자의 명령을 근거로 삼으면서. 우리 호모종에게 (직립과 뇌크기가 커지는) 진화의 산물로 암컷에게 부여된 압도적인 출산의 고통과, 길고 고단한 보살핌이 필요한 미숙아 출생의 문제를 외면할 수 있는 건가. 호모종 수컷은 씨를 뿌리고 도망가는 전략으로 온전히 유전자를 남길 수 없다. 유전자를 복제하여 후손을 남기려는 본능이 보장되려면 생존이 확보되는 일정 기간 양육까지 부담해야 한다. 수컷이 도망치면 암컷과 공동체에게 온전히 양육 책임이 전가된다. 번식 전략에 양육과 보살핌이 필수적이지 않았다면 부성애라는 형질은 진화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둘째. 본인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낳고 일정 기간 보호하여 생존을 보장하는 출산과 양육을 남성이 채워야할 욕구로써 인정한다면, 설거지 결혼은 대단히 훌륭한 전략이 된다. 진핵 생물은 생식에서 유전자를 각각 절반씩 물려받게 되는데, 최소한 외모라는 표현형에서 남성 본인의 유전자보다 상대적으로 더 우월한 여성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함께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야생과 달리 베타 개체도 생식에 성공하는 하이퍼거미 베타적 측면의 본질이라 본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베타에게는 애초에 기회가 없다. 알파적 기질이 없어도 물질적으로 부양할 능력을 확보하면 유전자를 남기고 형질을 물려줄 수 있다. 베타 수컷은 블루필 주입때문에 자원을 약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호모사피엔스의 약점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도태되지 않고 생식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레드필을 삼키고 연애에서 알파 행세 하는 것을 끝없이 추구하거나 블랙필을 삼키고 MGTOW나 인셀의 길을 걷거나 각자 자유지만, 전제 조건으로 반드시 따져봐야 할 것이다. 유전자를 남기고 후손을 남기려는 욕구와 본능 즉 출산 양육의 길을 직시해 보았는지, 신경을 못써본 것인지 아기를 대면하기 전까지는 발현되지 않는 유전자 형질을 간과하고 배제해 버린 건 아닌지. 결혼과 부양을 포기한 것인지 스스로 안하기로 한 것인지, 결혼을 못하는 것인지 안하는 것인지.
후손을 남기지 않는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에, 인생 목표가 확고한 싱글이 제대로된 성전략도 세우지 못하고 잘못된 결혼으로 고통받는 유부남을 동정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위와 같은 담론과 가정에 따르면 퐁퐁남 가정은 경쟁력이 검증되지 않은 싱글 1인가구가 감히 조롱하거나 매도할 등급에 있지 않다. 2세에게 자원을 투자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얻어내는 게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