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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끝 공상잡설 2017. 3. 3. 01:59
고등학교 학창 시절부터 간간히 우주의 끝을 짐작하거나 가늠해본 적이 있다.
고전적인 견해는 통상 엔트로피로 설명되는 열적 죽음이고, 빅 크런치로 표현되는 수축도 가능성의 하나로 묘사되었다. 빅크런치가 정서적으로 매력적이었던 것은 '시작'과 짝을 이루며 어울리는 형태의 '끝'과 새로운 시작 및 사이클을 암시하는 친화성 때문일 것이다.
끝이 있는데 그것이 또한 새로운 시작이라면 또는 가늠할 수 있는 범위에서 또다른 빅뱅 기작이 일어날 수 있다면 막막함은 줄어들 것이다.
마냥 막연히 대단하고 초월적인 시대상으로 치부하며 다가오지 않을 것만 같던 세기말과 21세기에 충돌하고 견디며 유년기가 슬그머니 끝나버리고. 거창한 우주론을 접어두고 얕은 인문학적 지식만 갈무리해보아도 문명은 수백년 이상을 퇴보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화석연료 에너지 위기 외에도 시장 내적 규칙 모순으로 인한 공황과 온난화 위기도 가시화되었으며. 지구과학스럽게는 어쩌면 태양풍의 변덕으로 전자기기에 입력된 모든 자산을 잃거나 태평양 어딘가에 떨어질 돌덩이에 환태평양에 자리잡은 모든 해안도시가 궤멸될 가능성 따위도 늘 존재한다. 그저 시간과 낮은 확률에 의존할 뿐이다.
어쨌거나 21세기에 와서 '빅크런치'는 에테르나 타키온처럼 레거시일 뿐이다. 유년기는 끝났고 폭발과 수축의 사이클은 없다. 어찌보면 고전적인 열적 죽음으로 회귀했을 따름일지도 모르겠으나, 어떤 확실한 풍경 한가지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은하는 서로 멀어지고 있고 어떤 임계점이 지나면 다른 은하의 빛을 결코 볼 수 없게 된다. 아마 지구 자전 속도가 느려지고 태양이 팽창하여 내행성 들을 집어삼킨 후에 적색거성으로 좀비화된 이후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별자리도 온갖 성운들도 저멀리 사라져서 도저히 그 빛들이 다가오지 못하고 우리의 우주론을 떠받치던 온갖 증거들도 재확인할 수 없게 된다.
이 이야기들은 브라이언 그린이 알려주었다.
그래서 철학적이고 추상적으로 고찰하던 새로운 시작이나 사이클 따위도 타키온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이어지는 빅뱅과 다음 우주는 상상할 여지조차 없게 되는 것일까. 최소한 '우주'에서는 그렇게 되었다.
여전히 그 어떤 사이클을 새로운 방식으로라도 고찰하고 싶다면 '멀티버스'와 다크에너지 다크매터를 물고 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들을 쫓아가기 위해 다차원 또는 11차원썰에 친숙해져야 할지 모르겠다. 막막하지 않은 끝에 관한 공상에 대해서라면 이것이 유년기를 졸업하는 조건이다. 블랙홀과 그 소멸 따위를 빅뱅과 연결짓는 공상 따위도 스케일이 꽤나 작아지고 후져 보이게 되어 버렸다.반응형'잡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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