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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13 쿼런틴 암흑물질
    잡설 2017. 7. 14. 21:32

    #1992년 #SF #우주론 #암흑물질

    쿼런틴 QUARANTINE
    그렉 이건 1992

    스포일러 주의. 하지만 딴 얘기 많이 할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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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김상훈에 의해 번역 출판된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쿼런틴 179페이지 중.

    "나도 몰라요. 그리고 <버블>은 바로 우리를 영원히 '모르는' 상태에 놓기 위해서 존재해요. 하지만 이 가설이 맘에 안 든다면 다른 가설들도 들려 줄 수 있어요. 아마 <버블 메이커>들은 차가운 암흑물질로 이루어진 종족일지도 몰라요. 인류가 아직 유효한 검출 방법을 갖고 있지 않은 엑시온이라든지, 약한 상호작용을 하는 무거운 입자(WIMP) 따위 말이에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인류는 이 종족에 대해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밖에는 끼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들은 인류의 기술 수준이, 자신들에게조차 영향을 끼칠 정도의 수준으로 발달했다고 느낀 거겠죠. 2020년대와 203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많은 천문학자들이 차가운 암흑물질을 찾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쓰는 장비의 감도와 정밀도는 매년 향상되고 있었어요. 아마 당시의 천문학자들의 책임인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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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퀀텀 유니버스'라는 교양과학을 읽고나서 다시 집어든 소설이었다. 읽은 시점이 대략 십여년전일텐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배경은 2060년대이고, <버블>이라는 것은 2030년대 어느날 무언가가 태양계를 덮어버려 외우주로부터 격리된 사건 및 현상을 표현한다. 하늘에서 태양과 행성 반사광 이외의 어떤 빛도 볼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인류가 외우주를 관측하지 못하게 하려는 <버블 메이커> 의도 가설을 논하는 대화이다. 인류라는 관측자의 우주에 대한 영향을 고찰하는 공상 테마인 것이다. (관측자 개입 이슈는 양자역학 범주이고, 외우주는 일반 상대론 대상이니 발상이 넌센스라 따지지 말자. 적당히 수긍해줘야 픽션을 즐길 수 있다. 과하게 고집부리면 십여년을 대가로 흘려 보내야 한다.)

    '암흑물질'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소설에서 중요한 장치나 설정으로 쓰이지 않았으며 그저 지나가버리는 개념이다. 소설을 구입해 읽었을 당시 독서 과정에서 흡수되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해버린 부분이라 생각된다. 스키마와 상호작용 못하고 무의미한 고유명사 취급당해 잊혀졌을 것이다.

    천문 및 물리학 교양 지식 깊이와 개인의 우주론적 세계관 사이 균형이 좋지 않을때 생기는 균열일 것이다. 지구 외 우주를 떠올릴 때, 즉 중심 항성과 공전하는 행성들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행성은 온갖 원소와 무거운 물질들의 터전이고, 항성은 계에서 전자기적 에너지의 근원이다.
    그러나 은하는 태양계를 확장한 구조로 취급할 수 없다. 항성 집합을 넘어서는 정교한 구조이며, 은하단의 분포도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항성이 죽을때 초신성, 적색거성, 백색왜성, 중성자별, 그리고 블랙홀 등등 몇몇 변수에 따라 다양한 양태가 있고 에너지 규모가 은하를 넘어서는 이질적이고 괴물같은 천체들도 관측된다. 은하 구조를 설명하다 보면 중심 거대 블랙홀과 암흑물질까지 동원되어야 한다.

    빅뱅 우주론을 인지하고 우주의 끝을 공상할 때쯤. 폐기된 정상우주론, 빅 크런치, 팽창과 수축을 가르는 임계점, 순환 또는 맥박 우주론 따위를 알게 되었는데. '타우 제로 TAU ZERO'라는 SF를 감상한 시기와 겹친다. 미국에서 60년대 말에 연재되고 92년에 국내 번역 출판되었다. 순환우주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어느 항성간 우주선의 특수 상대론적 성질이 주 장치가 되는 픽션이다.

    그렇다 1992년이다.
    그 시점에서 대략 1,2년전으로 거슬러가면 스티븐호킹의 '시간의 역사'가 번역 출판되어 국내 베스트 셀러에 오르고 블랙홀이 연구 대상이 아닌 교양 용어가 된다. NEWTON, 과학동아 청소년 잡지에서 빅뱅 이론이 컬러 화보로 소개된다. 저온 초전도체나 인공 핵융합을 위한 토카막을 알게된 시기와도 겹친다.
    SF 청년 독자로서 표현하고 논쟁할 능력이 시궁창이었으나 소설에 꽤 불만이 있었다. 우선 인간중심주의가 문제였다. 우주론에서 목적론은 '생명이 태어나고 우주를 관찰하며 고찰하는 지성체가 나타날 수 있도록 우주가 만들어지고 진화했다.'는 명제로 정리된다. 픽션에서는 인간 및 인류의 대립체 또는 거울(괴물, 초월자, 지능을 획득한 동물, 외계인, 다른 시공간 인간, 로봇, 인공지능) 갈등 구조에서 클래식 테마이며, 인간의 경계 테두리를 탐색하는 것이 SF에 대한 정의로 보일 지경이다. 고민과 외삽이 부족하면 '내' 패거리가 최우선이며 CHO 유기 화합물을 우주의 정점으로 여기는 '탄소 쇼비니즘'에 매몰되어 이야기가 꿀꿀해진다.
    우주의 경계(또는 시작과 끝)를 넘어서 정보를 전달한다는 이슈는 경이로왔지만, 다음 우주로 건너가 탐험가 인류를 내려놓는 우주선 엔딩은 인간원리의 유아 마초 버전이었다.

    그래서 인간원리의 감성적인 청소년 버전 대안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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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이 없는 것보다는 끝이 있는게 인문학적으로 그럴 듯하다. 모든 원소가 해체되어 절대 영도에 이르는 열적 평형은 뭔가 때깔이 안난다. 빅 크런치가 더 화려하고 시작과 대칭성이 맞는다. 그리고 새로운 빅뱅, 순환 우주론이라는 연속성을 암시한다.
    우주가 계속 팽창할지 언젠가 수축할지를 가르는 임계는 중력 세기, 즉 우주 질량에 달려 있다. E=mc^2에 따라 물질은 에너지와 등가인데, 이론적으로 양자요동 따위를 활용하거나 광자를 원료로 삼는 방식 등으로 질량 증가 디바이스를 만들 수 있다. (마이크로 블랙홀이 후보가 될 지 모른다.) 오토마톤(자기 복제로 증식하는 기계)을 사방에 흩뿌리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 임계는 결정된 것이 아니라 조작 가능한 변수일 수 있으며, 어떤 의식 또는 조직은 그것을 조작하겠다는 목표를 위한 강령을 따를 것이다. 말그대로 우주 전체를 찌부러뜨리고 끝장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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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흑물질은 은하 외곽의 움직임, 은하단과 우주 거대 구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증명된다. 관측할 수 없는데 질량을 가진 물체가 관측한 물체에 비해 6배 가까이 많다. 그 물질에 대한 불가지성이 아니라, 지금껏 파악한 물체와 지식이 우주의 5%에 불과하다는 회의감이 업데이트된 최신 교양이다.
    음압, 척력으로 작용하여 은하들을 서로 멀어지게 만드는 팽창력에는 암흑에너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략 우주의 70%을 채우고 있으며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은하간 팽창 속도가 광속을 넘어서는 임계 지점이 있다. 다른 광원에서 출발한 빛이 도달하지 못하여 밤하늘이 어둠에 잠기고 은하수를 제외한 그 무엇도 관측할 수 없는 미래. <버블> 은하 버전은 픽션과 무관한 현실이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간 변환으로 쉽게 치환하여 고찰을 계속해 볼 수도 있을까. 암흑에너지 감소 수단을 찾는 이야기로 대체하는 셈인데,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정체를 전혀 모르는 것에 대한 이름이므로 궁극적으로 밝혀지고 규명될수록 개명되어야 할 운명이다. UFO(미확인 비행물체) 비밀은 밝힐 수 없다. 확인되어 분류되면 더이상 UFO가 아니고 비밀도 아니기 때문에.

    1992년의 어느 독자는 서점과 도서관에서 암흑물질을 설명해 주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우주의 운명에 대한 공상적 모델을 요령껏 세련되게 업데이트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작가 그렉 이건은 호주에서 논문을 읽으며 기반 지식을 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전공은 물리나 천문이 아니었고, 직업은 프로그래머였다. 그래서 작가적 비전이 개입되지 않은 교양 천문학 지식을 플롯과 무관하게 투영한 것이다.

    쿼런틴에는 외삽으로 서울과 한국에 대한 묘사가 몇번 나온다. 경제 강대국 취급이다. 세계화라는 용어를 TV 광고로 홍보하고 IMF 경제 위기를 불러올 정부 출현이나, IT 및 게임 강국이라는 현실은 다가오지 않은 시점이다.
    소설이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되는 미래가 그 다음으로 다가오는데 작가의 세계관과 대담한 의도에 기가 눌리지만, 도저히 경이감이나 몰입감을 느낄 수 없으며 무슨 방식의 재미를 추구한 것인지 접근하지 못한다. 또다시 십여년이 지나고, 양자역학 해석 논쟁과 다세계이론을 버무리고 언어유희로 가공한 인간원리 사고 실험 이야기임을 깨닫는다.
    25년전 어느 글쓴이의 정신세계는 무척이나 따라잡기 어려운 편이었다. 쉬운 파동함수 풀이를 따라가 보고 싶은 교양적 호기심이 이제서야 생겨나는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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