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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30 와인잔
    개인사 2023. 6. 5. 11:50

    소소한 #일상

    구입한 와인잔 첫 개시!

    오오. 내가 ‘나’를 위해 예쁜 와인잔을 다 사다니.

    철학자 #강신주 선생께서 식사와 사료의 차이를 이야기하신 적이 있고, 팟캐스트를 통해 들은 적이 있다.

    이제 자취 생활이 7년쯤 되어가고, 강남구에서 혼자 산지는 5년이 되어간다. 불혹을 넘어 혼자 살기 시작한 것이다.

    부엌 가스렌지 앞에 서서는 라면을 끓이고, 바로 거기 선채로 혼자 먹고는 바로 설겆이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취방을 찾아간 친구의 목격담이었다. 여기서 사료와 식사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

    라면을 끓이거나 밥을 볶고나서 접시나 그릇에 옮겨 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전에는 냄비에서 바로 입으로 음식을 옮기곤 했고, 그게 엔트로피를 줄이는 효율적인 행동이라 생각했었다. 냄비에서 숟가락질을 하니 냄비 수명이 짧아지는 지도 모르고.

    나는 ‘나’를 위해 어느 선까지 소비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다. 택시를 타거나 식사장소를 물색할때 미리 가격을 따지고 상한선을 긋지는 않는 선까지는 되었는데, 혼자 #파인다이닝 을 체험해볼 생각은 영 들지 않는다. 아직은 과시적 소비의 영역인 것이다.

    마트에서 4만원 정도에 파는 버번 위스키는 사두고 반주로 종종 따라 마시는데, 오로지 나 혼자 즐기기 위해 오픈한 양주 상한선은 메이커스마크 버번 위스키였고 면세점에서 5만원대 정도에 구매했었다.

    Bar에서 발베니 맥켈란 등의 섬나라 위스키를 사먹기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위스키는 대략 다섯번중 한번꼴로 빈도를 제한하고, 대개 혼자 먹지 않으며 최소한 목격자라도 필요한 환경에서 소비한다. 그러니까 오로지 나를 위한 소비 영역은 아닌 것이다.

    ——

    캡슐 커피나 재활용 캡슐에 담는 원두 시음도 시도해 봤지만, 아직까지는 유통기한 지난 믹스커피를 대충 타 먹는게 편하다. 그나마 혼밥 식후 커피를 즐길 정도로는 취향을 끌어 올린 것이다.

    이 모든 TMI의 근본은 내가 ‘나를 어느 수준까지 존중하는가’라는 문제에 닿아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프라이드 에그와 김치 김 반찬과 국을 꺼내두는 삼첩반상을 차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만약 반려자나 아이와 함께하는 상이라면 쪽팔려서라도 삼첩급 밥상이나 파스타 접시 같은 거라도 차릴 듯 하다.

    내가 나를 이 정도라도 대접하게 되는 수준까지 올라오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혼자만의 평화와 적응이 필요했다. 다만 그 기간 동안 연애 결혼 출산 양육 적령기가 훌쩍 지나버렸을 뿐이다.

    나의 남은 인생은 소비 활동으로만 채워질 것이다. 그래도 다 괜찮다. 그 의미를 충분히 생각해봤는데, 내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 정보를 생식세포 결합 활동으로 세상에 남기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유의미한 것은 아니었다는 결론이다.

    ‘성대가 있다고해서 모두 성악가가 될 필요는 없듯, 자궁이 있다고해서 모두 엄마가 될 필요가 있는 건 아니다.’

    고환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정자를 줄 자궁을 찾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과거라면 패배자의 변명에 해당할만한 이야기가 왜 통할 수 있을까. gene 의 복제력보다 meme 의 자기복제력이 훨씬 강력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현 시대 유전자 보존이나 개체수 관점에서 가장 성공적인 동물들은 ‘가축’들이다. 그 사소한 부작용으로 가끔 수만 마리씩 살처분 당하기는 하지만.

    ——

    TMI 좀 더하자면, 혼밥을 먹는 식탁의 아마존 파이어 태블릿 아래에는 1:144 스케일 탱크 모형이 두개 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인데, 각각 ‘미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전차이다.

    그리고 뜬금없이 따로 1:144 전투기 피겨가 하나 있는데, 유로 타이푼이라 불리는 모델이다. 요즘 시국과 겹쳐보며, 나의 어떤 무의식이 언젠가 저것들을 저렇게 두었는지 궁금해졌다.

    요즘 애용하는 머그잔은 선물받은 MOMA 기념품이다. 즉 art 에 대한 컴플렉스를 보완할 토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얼마전 깨진 와인잔을 대체하기 위해 새 와인잔을 구입한 것이다.

    그래서 남은 파채와 김치 찌끄레기를 쓸어담아 밥을 볶은 후, Vino de España 를 반주로 들이켰다.

    이상. 오늘의 소소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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